게임 업계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거긴 망한 회사야.”
“인디 가면 커리어 끝나.”
“첫 회사는 무조건 AAA여야 한다.”
듣고 있으면, 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고, 뒤처진 것 같고, 뭔가 큰일 나는 것 같죠.
근데 사실, 그건 대부분 머릿속에서 내가 스스로 쓰는 소설이에요.
“여기 가면 돈을 많이 못 벌겠지.”
“커리어가 나빠 보이는 회사면 평생 그 수준에서 끝나는 거 아닐까?”
이런 불안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것 역시 내가 머릿속에서 쓰고 있는 소설일 뿐이에요.
애초에 돈을 따진다면 게임업계는 타업계에 비해서 좋지 않은 조건입니다.
그안에서 조금이나마 내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이 강한거에요.
1. 미루는 건 두려움 때문
포트폴리오를 미루는 것도, 지원서를 못 누르는 것도, 사실은 “내 결과물이 부족하다”는 두려움 때문이에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설을 내가 먼저 쓰고, 그게 나를 눌러버리는 거죠.
근데 웃긴 건, 막상 제출해 보면… 별일 없이 지나가요.
저도 그랬고, 대부분 다 그렇더라고요.
불교에서는 “있음에도 괴롭고 없음에도 괴롭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돈이 많아도, 커리어가 좋아도 괴로운 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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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회사에 다니면 매년 실적 압박에 시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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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연봉을 받아도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져 버리면 행복하지 않아요.
반대로 돈이 적고 회사 이름이 덜 알려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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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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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이 덜한 환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어요.
즉, 돈과 커리어는 행복의 절대 조건이 아니에요.
거기에 집착할수록 “이 길은 잘못됐다”는 소설이 더 두꺼워지고, 그 소설에 눌려 스스로를 괴롭히게 돼요.
2. 직장도, 결혼도, 아기도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은 늘 있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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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꼭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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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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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회사는 가야 하고, 저 회사는 가면 안 돼.”
근데 실제로는 다 소설이었어요.
결혼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롭고, 애가 있어도 힘들고, 없어도 힘들어요.
직장도 똑같아요.
AAA면 AAA대로 압박 있고, 인디면 인디대로 배움이 있고.
어디든 고통과 즐거움은 같이 와요.
3. 소설을 내려놓을 때
“좋은 회사, 나쁜 회사”라는 이분법이 진실처럼 들리지만, 그게 나를 더 괴롭히는 소설이에요.
실상은 그냥 달라요. 서로 다른 맛이 있을 뿐.
짜장면 먹으면 짬뽕이 맛있어 보이고, 짬뽕 먹으면 짜장면이 맛있어 보이듯이.
취업도, 커리어도, 결국은 그런 거예요.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지금 경험하는 삶”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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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이 크지 않아도, 그 안에서 배우는 게 있으면 그건 내 자산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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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름이 크지 않아도, 거기서 만난 동료와 프로젝트가 내 발판이 돼요.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고통은 돈이 적어서, 커리어가 낮아서 오는 게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나는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나는 반드시 좋은 회사 이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거죠.
4. 그래서 괜찮다
지금 지원하려는 회사가 남들이 “안 좋다”고 해도, 그게 곧 내 인생의 실패는 아니에요.
거기서도 배울 게 있고, 버틸 힘이 생기고, 다음 스텝을 준비할 여유도 생겨요.
완벽한 회사, 완벽한 첫 단추, 그런 건 없어요.
있는 건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뿐이에요.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을 거예요.
지금 눈앞의 선택이 남들이 보기에 ‘안 좋아 보이는 회사’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만의 배움과 인연이 있고, 그것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커리어의 실상이에요.
돈이나 간판은 변해요. 하지만 내가 쌓는 경험은, 그리고 그 경험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괜찮습니다.
지원해도 괜찮습니다.
남이 써준 소설이 아니라, 내가 직접 써 내려가는 커리어가 될 테니까요.
